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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저리 주저리

말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다

말, 언어, 단어는 생각을 담는 그릇이다.
그 그릇이 오용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서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맛깔스런 단어를 덥썩 물어서
자기의 생각을 표현하다보면,
자신이 원래 말하려고 했던 바와는
전혀 다르게 해석되어질 수 있다.
특히 설교하는 목사들에게나,
글쓰는 사람들에게는 더 막중한 책임이 있다.

http://jabo.co.kr/sub_read.html?uid=34148




강간 고문도 문화라면 표절 컨닝도 문화겠지?

[강상헌의 글샘터] 바른 이름 정명론(正名論)은 언어의식의 바탕이다

 

강상헌 

문화, '문명[文]으로 변화[化]하는 것'이다. 처음 서양문물에 접한 개화(開化期)의 동양사회가 컬처(culture)라는 서양말을 쓰기 위해 고안한 용어다. 재배(栽培) 즉 식물을 키운다는 뜻의 라틴어 콜로레(colore)가 컬처의 어원이다.

cell(세포 細胞) philosophy(철학 哲學) economics(경제학 經濟學) geometry(기하학 幾何學) electricity(전기 電氣) handshake(악수 握手) 등과 같은, 큰 배 타고 온 많은 '서양(개념)어'들이 우리보다 먼저 서구(西歐)를 맞은 중국과 일본에서 '동양어' 새 얼굴을 가지게 된다. 서양에서 전래된 여러 문명의 ‘이름’들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이 땅에도 그 새 얼굴들이 들어와 어찌어찌 한글 품에 안겼다. '문화'도 같은 경우다.

살핀 것처럼 '문화'는 가치(價値)를 품은 말이다. 가치친화(親和)적, 가치부가(附加)적, 가치지향(志向)적인, 긍정적인 말인 것이다. 그래서 그 사용에 상당 수준의 절제나 기준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 말이 요즘 아무렇게나, 구겨지듯 쓰인다. 몰(沒)가치적 반가치적으로, 패륜(悖倫)까지 서슴지 않고 품는다. 신문에까지, 이렇게 나타난다. 

퇴폐문화, 성폭력문화, 부킹문화, 표절문화, 매춘문화, 커닝문화, 속임수문화 등 신문기사 데이터베이스를 잠깐만 뒤져도 한 무더기다. 인터넷 말글에는 더 심하다. 

강간문화라는 말까지 꽤 쓰이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가출, 범죄, 엽색(獵色), 밀수, 마약, 고문(拷問)은 왜 문화가 아니겠는가? 라디오에서 '청소년의 자살문화'라는 말을 듣고 섬뜩했다. 그럼 살인도 문화라고?

아, 우리 사회 구성원 중 일부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뜻 모르는 말을 생각 없이 '생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이런 혼돈 담은 탁한 언어의 소용돌이가 다시 사람들의 생각과 그 틀을 아무렇게나 휘저어 구겨버리는 것은 아닌가? 생각 담는 그릇(언어)이 반듯하지 않음을 심히 저어하는 것이다. '문화'의 오남용은 그 본보기 중 하나겠다.

사회학에서 쓰는 '문화 지체'라는 개념은 이 시점에서 중요하다. 지체(遲滯)는 변화의 흐름에 뒤쳐져 주변과 일으키는 마찰이란 뜻이다. 비뚤어지고 침체되고 낙후하여, 타인과 사회에 지장을 주는 것이다. 위 사례들이 바로 그런 현상들이다. 이런 '가치부정적'인 지체의 무더기에는 문화라는 말이 적절치 않다.

이런 현상들은 '문화'가 아니고 골칫거리다. 어렵지만 꼭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점'인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일부 언론인들을 포함한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상당수는 '문화 지체'를 '문화 자체(自體)'로, 문제를 문화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로구나. 아하!

문화와 함께 정치 경제 사회 등 전 분야의 중앙집중 현상이 나라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다. 이런 엉뚱한 유행은 머지않아 아직은 청정한 지방 문화의 분위기에까지 전염될 터다. 물론 가정의 순결성에도 영향 미칠 수 있다. 개개인의 ‘바른 언어’에 대한 생각이 또렷해져야 할 시점인 것이다. 

▲ 강상헌 · 언어문화평론가 / 시민과 자연 발행인, 사단법인 우리글진흥원 원장     ©대자보

아마 '(못된 것까지도 포함하는) 인간 행동의 여러 모습'을 표현할 적합하고 적확한 단어를 떠올리지 못했거나, '문화'라는 단어의 겉멋에 심취한 나머지 행동 양식(樣式), 문제 행태(行態), 현상, 요령, 비결(秘訣) 등으로 표현해야 할 여러 상황을 대충 문화라는 말로 애매하게 얼버무린 것이리라. 

애매하면 뜻 망가진다. 프랑스 작가 플로베르의 일물일어설(一物一語說)은 문학 이외 분야에서도 긴요하다. 하나의 물건이나 상황에 맞는 말은 오직 하나라는 것이다. 이런 뜻 살려 제 뜻 잘 펴는 글 지으려면 낱말 곳간이 두둑하고 건강해야 한다. 어그러진 뜻으로는 온전한 생각 지을 수 없다.

젊은 학도들을 포함한 우리 ‘문화인’ 모두, 영어 익숙한 만큼 한글 단어장도 튼실한지, 아프게 살필 일이다. 어찌 표절에 컨닝이 문화일 수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