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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노트 창업자 "최고 전략은 경쟁 안하는 것"

[머니투데이 실리콘밸리=유병률특파원][[유병률의 체인지더월드] < 67 > 경쟁이란 무엇인가? 두 번째 이야기]

누군가 기자에게 '에버노트'를 써보니 어떠냐고 묻는다면,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두 배쯤 똑똑해진 듯하다고 대답할 것 같다. 인터넷 검색창에 '에버노트'를 치면 체험수기 같은 유저들의 평이 줄줄 올라온다. '에버노트가 내 삶을 바꾸었다'는 식이다. 메모하고 저장하는 이 앱이 전 세계 7500만 명의 삶을 바꿔놓고 있다. 그냥 앱이라고 부르기 미안할 정도로.





필 리빈 에버노트 창업자겸 CEO. 직책과 관계없이 책상 크기가 모두 똑같다. /레드우드시티=유병률기자





매주 목요일이면 에버노트 전 직원이 이 계단에 걸터앉아 회의를 연다. 미주알고주알 모든 것이 공유된다.

에버노트 창업자인 필 리빈(41)을 만나기 위해 에버노트 건물을 찾았을 때 시선을 확 잡아 끈 것은 계단이었다. 아래층 천장 가운데를 뻥 뚫어서 아주 크게 계단을 만들어 위층과 연결한 것. 그는 이 계단을 통해 시간과 편리함만 얻은 것이 아니었다. 소통을 만들었다. 이 계단에서는 아래층 위층 직원들이 수시로 마주친다. 층계 층계에 직원들이 걸터앉아 매주 전체 직원회의도 연다.





1층 로비에는 커피 박스가 있다. 매일 임직원들이 돌아가면서 서빙을 한다. 물론 필 리빈도 예외가 아니다. 커피를 만들어주면서 많은 대화가 오간다.

혁신과 경쟁에 대한 그의 철학이 예사롭지 않았다. 꼭 파괴를 해야 혁신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주위의 적들 때문에 내가 실패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 그는 "최고의 전략은 경쟁하지 않는 것, 내가 좋아하는 제품은 더 잘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살얼음판 같은 비즈니스 세계에서 말이다.

누군가 나보다 낫다고, 내가 실패하는 것은 아니다

에버노트가 잘 나가고 있지만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을 만큼 경쟁자가 수백 개다. 구글만 해도 구글닥스(docs), 구글키프(keep)를 가지고 있고, 드롭박스(클라우드노트), 마이크로소프트(오피스, 원노트), 박스(박스노트)가 모두 직접적인 경쟁사. 하루하루 가시방석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는 어느 누구와도 경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비즈니스를 오케스트라에 비유했다. "물론 연주자들끼리 미워하고, 헐뜯기도 하죠. 하지만 나보다 나은 연주자가 많으면 그 공연은 더욱 빛나는 거예요. 비즈니스도 인터랙션이 있는 생태계입니다. 내 관심은 '경쟁자들과 어떻게 더 잘 협조할 수 있을까'이지요. 다른 서비스에 에버노트를 얹을 수 있고, 연동하면 더 좋은 서비스를 만들 수도 있고, 시장을 더 키울 수 있으니까요."

그는 삼성과 애플도 예를 들었다. "애플은 삼성한테서 엄청나게 부품을 사갑니다. 삼성은 애플과 함께 시장을 넓히죠. 두 회사는 겉으로 싸우고 있지만, 사실은 인터랙트하는 것이죠."

그래도 나보다 훨씬 쟁쟁한 상대가 나오면 나는 무너지고 마는 것이 아닌가? "설령 그런 시장이라고 하더라도 가장 좋은 전략은 내가 만들고 있는 물건, 더 잘 만드는 겁니다. 누군가 나보다 낫다고 해서 내가 꼭 실패하는 게 아니에요. 반대로 내가 상대를 실패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못합니다. 벽돌이라도 던질 수 있을 것 같나요? 안됩니다. 그럴 시간 있으면 자기 제품 더 잘 만들어야 해요. 가장 좋은 전략은 경쟁 자체를 하지 않는 겁니다."

경쟁자 신경 쓰지 말고, 내가 만들고 싶은 것 만들어라

그가 경쟁에 대해 이런 철학을 가지게 된 것은 에버노트를 만들면서부터이다. 2개 회사를 만들어 팔았고, 합쳐서 모두 10개 회사에서 일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의 관심은 "우리의 적은 누구냐"였다.

"그런데 열 번 모두 안 통하더라고요. 그때는 모든 초점이 '우리가 깨부숴야(crush)할 회사가 어디냐', '가장 큰 경쟁상대는 누구냐' 이런 것이었죠. 그런데 성공한 이유도, 실패한 이유도 '적'과는 별로 상관이 없더라고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내 제품, 그리고 시장의 변화였습니다. 그래서 다음부터는 경쟁상대는 생각하지 말자고 결심한 거죠."

그래서 그는 창업가들에게 "당신 회사가 망할 수 있는 이유 목록을 만들어 보라"고 조언한다. "막 시작한 회사가 대응할 수 있는 것은 상위 5개 정도 일겁니다. 그런데 '경쟁자 때문에 죽을 수 있다'는 '탑10'에도 못 낍니다. 돈이 떨어진다든지, 창업자간 이견이 생긴다든지, 이런 게 상위일거에요. 우리 자원을 아깝게 경쟁에 쏟을 이유가 없어요."





벽면을 모두 화이트보드로 사용할 수 있는 페인트로 칠했다. 언제든 마주치면 그림 그려가면서 이야기하라고 말이다.





노트북 올려놓고 걸으면서 일할 수 있도록 했다.

고객에게도 신경 쓰지 말고, 내가 좋아하는 것 만들어라

우리는 고객제일주의와 같은 슬로건에 익숙해있다. 그러나 그는 고객을 잊으라고 한다. "5년 전쯤만 해도 그랬죠. 그때만 해도 '당신이 좋아하는 것을 만들어봐'라고 말하는 것은 어려웠습니다. 늘 '고객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였죠. 그런데 스마트폰, 앱스토어, 소셜미디어가 세상을 편평하게 만들었어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으면, 이 세상에 1억 명 정도 똑같이 좋아한다는 것이죠. 나를 위한 제품, 내가 쓸 제품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래야 오히려 성공할 수 있다는 것, 이건 엄청난 기회인 거죠."

에버노트에는 광고도 없고, 고객 데이터를 분석해서 돈 버는 것도 하지 않는다. 처음엔 무료로 쓰다가 정말 괜찮다 싶은 고객들이 프리미엄 서비스를 돈 주고 구입하는데, 이게 비즈니스 모델이다.

"에버노트는 제가 좋아서 만든 겁니다. 제가 쓰려고 만든 거예요, 그런데 전 광고 보는 게 싫고, 누가 저의 데이터를 들여다보는 것도 싫단 말이죠. 나를 위한 제품인데 내가 싫어하는 것으로 돈 벌어서는 안 되는 거죠. 그리고 또 하나, 우리는 게임회사가 아니라는 거예요. 며칠 사용하다가 싫증날 수도 있는 게임으로 돈 버는 게 아니에요. 두고두고 몇 년, 몇 십 년을 사용하시라. 그러면 우리가 돈 벌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신뢰를 저버릴 수 있는 일을 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책상에 앉아 일하기 지겨우면 카페처럼 된 소파에 앉아서 일해도 된다.





에버노트에는 매층마다 작은 키친이 있다. 한국의 '신라면'도 준비돼 있다.

100년 기업을 만들려면 지킬 게 없어야 한다

'회사를 팔지 않겠다'는 것도 그의 유별난 지론이다. 실리콘밸리의 대부분 창업가들에게 더 큰 회사에 팔기 위해 회사를 만드는 것이 거의 상식적인 일이다.

"회사 만드는 첫날부터 이걸 키워서 어떻게, 어디에 팔지? 라고 생각한다면 얼마나 슬프고 비참한 일입니까? 세상의 위대한 기업가들을 보세요. 팔려고 만든 사람은 없어요. 어떻게든 세상을 좀 더 바꿔보려고, 뭔가 독특한 것을 만들고 싶어서, 이런 것이 동기가 되어서 회사를 세운 겁니다."

그의 목표는 에버노트를 100년 기업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냥 '100년 기업'도 아니고, '100년 스타트업'이다. 스타트업이라는 것이 이제 갓 만든 회사를 말하는데, 도대체 그는 어떤 회사를 만들겠다는 말인가?

"저는 오랫동안 기업가정신에 대한 가장 좋은 정의는 무엇일까 찾아왔어요. 그래서 찾은 게 바로 이겁니다. '지금 현재 통제할 수 있는 자원에 얽매이지 않고, 기회를 추구하는 것(the pursuit of opportunity without regard to resources currently controlled)'입니다. 스타트업이 된다는 것도 이런 거예요. 내가 현재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또 나의 현재 지위나 위치와 상관없이, 내가 가고 싶은 방향대로 한번 추구해보는 것,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면서 테슬라 이야기로 이어갔다. "엘론 머스크가 "세계에서 가장 좋은 차를 만들고 싶어. 아직은 아무것도 없지만 말이야"라고 이야기를 하지, "나는 지금 세계에서 세 번째로 잘 팔리는 차를 만들고 있는데, 이걸 발판으로 가장 잘 팔리는 차를 만들어야지"라고 이야기하지 않아요. 전세계에 100년 이상 된 기업이 3000개 정도 있는데, 일하고 싶은 기업은 별로 없어요. 100년 가면서도 일하고 싶은 회사로 남으려면 계속 스타트업이어야 합니다. 현재를 보기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보는 것, 그렇게 하려면 스타트업으로 계속 남아야 합니다."





혁신은 파괴를 동반하지 않는다. 혁신은 위대한 것을 만드는 것

에버노트가 100년이 흘러도 모두가 일하고 싶은 회사로 남기 위해 그가 CEO로서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바로 혁신적인 스타트업 문화를 끊임없이 주입하는 것. 책상 크기는 직책 불문하고 똑같다. 자기 일만 처리하면 휴가는 무제한. 휴가를 가는 것이 보상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무실에 있는 것이 무슨 벌도 아니다. 스타트업은 모든 직원들이 왜 그 일을 자신이 해야 하는 지 잘 알고 있는 기업이다.

"참 많이 고민했습니다. 스타트업의 끝은 어디인가에 대해 말이지요. 스타트업은 규모의 문제, 기업역사의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코카콜라를 보세요. 120년 된 기업인데 최근 5년이 가장 혁신적이 인 것 같아요. 그렇게 혁신적이던 애플이 잠시 주춤하다가 최근 다시 혁신적으로 변하고 있어요. "





근무시간에 탁구를 즐기는 직원들.

혁신에 대한 그의 철학은 확고했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혁신은 경쟁과 파괴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했고, 실리콘밸리에서도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가 '디스트럽션(distruption)'이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완전히 달랐다.

"마크 저커버그가 마이스페이스를 파괴하려고 페이스북을 시작한 건 아니잖아요. 저커버그는 마이스페이스에 대해 신경도 쓰지 않았어요. 혁신의 동기는 창조적 파괴도 아니고 돈은 더더욱 아닙니다. 저는 돈에 무관심한 편이지요.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으려면 좀 필요한 것 정도? 빌게이츠, 스티브잡스도 동기가 돈은 아니었습니다. 자본주의(capitalism)라고 할 때 자본은 돈만 이야기하는 게 아니에요. 무엇인가를 만들 수 있는 모든 자원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자본주의의 초점은 돈이 아니라 만드는 것(building)입니다. 월스트리트에서 동기가 돈이라면, 실리콘밸리는 위대한 것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세상에 막 나오는 젊은 친구들에게 조언을 잊지 않았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겠다는 사람, 여유시간이 많이 나는 일자리를 원하는 사람은 안 됩니다. '나도 세상을 좀 움직여보고 싶어'라는 생각을 갖고 열심히, 생산적으로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에버노트에서 일할 사람입니다."





많은 인터뷰이를 만나봤지만, 이토록 자기 세상의 시작부터 끝까지 훤하게 꿰뚫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의 이야기는 모든 것을 아우르고 있었다. 시작과 끝을 다 말하고 있었다. 동기는 위대한 것을 만드는 것이며, 경쟁은 필요 없고, 오직 내가 좋아하고 만들고 싶은 것을 계속해나가면 되는 것이고, 끝까지 스타트업 정신으로 파괴하지 않는 혁신을 계속해나가는 것. 그에게도 우리에게도 시작에서 끝까지 오직 한 길만이 있다.

머니투데이 실리콘밸리=유병률특파원 bryu@